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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에도 '욱'.. 헐크로 변하는 아이들

다중지능 2017년 07월 05일 15:21 조회 227

# 초등 5학년생 아들을 둔 주부 김주희(가명·39·경기 오산)씨는 자꾸만 ‘욱’ 하는 아이로 인해 고민이 깊다. 평소엔 뭐하나 입댈 곳 없는 모범생 아들이 뭔가 자기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생기면 불같이 화를 내기 때문이다. 김씨는 “동생이 머리카락을 만졌다거나 저녁 밥상 차림이 조금만 늦어지기라도 하면 분노를 폭발한다”며 “평소엔 착하고 순한 아이가 화를 내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 주부 한성은(가명·40·인천 남동구)씨 역시 날이 갈수록 화를 참지 못하는 초등 1학년생 아들이 걱정스럽다. 며칠 전 친구와 술래잡기를 하다 ‘이제 네가 술래야’라는 말에 분노해 주먹을 날린 것. 한씨는 “다행히 제가 곧장 발견해 어안이 벙벙해 하는 친구에게 대신 사과하고 화가 난 아이를 진정시켰다”면서 “앞으로 학교나 학원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아이를 키워야 할지 고민”이라며 한숨지었다.

최근 사소한 일에도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폭발하는 아동∙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이처럼 화를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고 지나칠 정도로 표출하는 증상을 흔히 '분노조절장애'라고 부른다. 정확한 병명은 '간헐적 폭발 장애(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 성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증상이 이제 어린 학생들에게로 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 홧김에 저지르는 청소년 범죄가 언론에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으며, 지역복지센터나 공공기관, 종합병원 등에서도 이를 막기 위한 공개강좌가 속속 열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급격한 성장과 호르몬의 변화를 겪는 사춘기엔 이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소희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홍보이사(국립중앙의료원 정신과 전문의)는 “분노조절장애는 화를 느끼는 뇌의 변연계 부위가 과다하게 흥분하거나 이를 제어하는 기능을 가진 전두엽 부위의 기능이 저하돼 있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종의 증후군”이라며 “청소년의 경우 뇌가 아직 미성숙한 상태이기 때문에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고, 타고난 기질과 같은 유전적 요인이나 과도한 스트레스∙아동 학대 피해 등 외부 환경적 요인, 우울증∙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정신과 질환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이런 증상이 악화될 경우, 극단적 범죄행위를 초래하기도 한다. 지난달 경기도 성남에서 주먹과 발로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한 고교생 A군이 경찰에게 붙잡혔다. 조사 결과, A군은 “아버지가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느냐’고 꾸지람하자 이에 격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지난 4월 충북 청주에서는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빌라에 불을 지른 중학교 2학년생 B군이 경찰에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B 군은 "빌라 근처에서 한 아저씨가 '왜 근처에서 얼쩡거리느냐'며 기분 나쁘게 말한 것이 생각나 불을 질렀다"고 진술했다.

전문가들은 “제어되지 못한 분노가 지속되면,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는 ‘묻지마 범죄’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이사는 “이 상태로 성인이 되면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사소한 갈등이 극단적인 피해의식을 거쳐 이상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내재화 장애(심리적 장애)는 물론, 우발적인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예컨대, 지난달 온 국민의 공분을 샀던 경남 양산의 아파트 밧줄 절단 사건과 충북 충주에서 홧김에 애꿎은 인터넷 수리기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 역시 피의자들의 분노조절장애로부터 비롯됐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실제로 이 같은 증상은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증가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습관 및 충동장애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12년 4937명에서 2016년 5920명으로 5년 새 19.9% 증가했다. 성별∙연령별 환자 수(2013년 기준)는 10대 남성이 1106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20대 남성 986명, 30대 남성 745명, 40대 남성 454명, 10대 여성 366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10대 분노조절장애 환자 수가 급증한 원인으로 날이 갈수록 커지는 경쟁사회와 과도한 자기애를 꼽았다. 이들 대부분은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 과열돼 타인의 사소한 행동에도 ‘무시당했다’는 기분에 사로잡혀 쉽게 분노하는 등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규식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난 것은 과도한 입시경쟁과 부모에 의한 과잉보호 등의 영향으로 원활한 대인관계 능력을 기르지 못한 탓이 크다"며 "이에 부모가 옆에서 참고 인내했을 때의 보상 등에 대해 차분히 알려주며 아이의 분노조절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 역시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평소 아이와 속 깊은 대화를 충분히 하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파괴적인 행동으로 표출되는 빈도가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이사는 "부모와 함께 충동조절에 관한 교육과 훈련을 꾸준히 하는 것이 분노조절장애를 막는 최적의 예방법"이라고 말했다.

“아이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자세를 가지세요. 예컨대, 대화 중 아이가 과도하게 화를 내는 상황에선 언쟁을 계속하기보단, 10~20분 정도 마음을 안정시키고 다시 대화를 시도하는 게 좋아요. 부모 또한 아이의 과도한 분노에 대해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로 작용하는 효과도 있죠. 이 같은 노력에도 아이가 잘 따라주지 않는다면,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 아이의 심리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조선에듀  2017.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