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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격차는 호르몬에 따라 흐른다

다중지능 2017년 02월 15일 12:08 조회 15914

ㆍ“ADHD는 소득수준 낮은 가구 발생률 더 높다” 연구 결과… 건강 불평등 어린시절부터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

열 명 중 한 명.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데이터·통계 페이지는 2011년 미국의 학령기(4~17세) 인구 중 약 11%가 ADHD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는 최근 연구내용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ADHD는 아동과 청소년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질환이다. 미국 정신의학회(APA)가 펴낸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 제5판>(DSM-5)에서도 아동의 ADHD 발생률은 5% 이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에서만 흔한 것도 아니다. 국내에서도 ADHD는 우울증 다음으로 흔한 신경정신계 질환 중 하나다. 국내 연구진은 가장 발생률이 높은 초등학생 연령대에서 ADHD 발생률이 약 6∼8% 수준인 것으로 보고 있다.

비율로 보면 초등학교 한 학급마다 적어도 한 명의 ADHD 어린이가 있을 정도로 흔하지만 정확한 발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주의력이 부족한 상태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거나 산만하고 과다한 활동, 충동적인 성향을 보인다. 학교에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딴짓을 하는가 하면, 지나치게 수다스럽거나 뛰어다니는 등 과잉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일 때 ADHD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일반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만큼 병원을 찾고 진단을 받는 인구도 늘기 때문에 ADHD는 최근 가장 주목받는 신경정신계 질환이 됐다.

그런데 이 ADHD가 소득수준이 낮은 가구에서 자란 아동들에게서 더 높은 발생률을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아직 나이가 어린 성장기 아동에게도 빈부격차와 같은 사회적 요인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ADHD 발생 위험도는 소득수준이 높고 낮음에 따라 많게는 1.7배까지 차이를 보였다. 소득이 낮은 환경 속에서 장기적으로 만들어지는 생활습관이 발병률에 영향을 미치는 성인병이나 대사질환처럼, 소득에 따른 건강 불평등이 어린 시절부터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의 근거가 나온 것이다.

박은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예방의학과 교수팀은 2002~2003년에 태어난 아동 1만8029명을 조사했다. 처음 태어난 4년 동안(0∼3세)의 가구 소득수준의 변화를 기록한 뒤, 아이들이 10∼11세가 됐을 때 과거 소득수준에 따라 ADHD 발생 위험도가 다르게 나왔는지를 살폈다. 가구 소득수준을 저소득층(소득 하위 30% 이하), 중하위층(소득 31∼50%), 중상위층(소득 51∼80%), 상위층(소득 상위 81% 이상)으로 나눈 뒤 4년 동안의 소득수준 변화에 따라 ADHD 발생 위험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했다.

그 결과 가구소득이 급격히 줄어든 가정에서 자란 아동들은 같은 기간 동안 가구소득이 지속해서 중상위층을 유지했던 아동들보다 10∼11세 ADHD 발생 위험도가 1.7배 높았다. 가구소득이 최하위층과 중하위층인 가정에서 자란 아동들은 소득수준이 중상위층이었던 가정에서 자란 아동들보다 각각 1.5배, 1.4배 높은 위험도를 보였다. 반면 가구소득이 중상위층에서 상위층으로 오른 경우에는 ADHD 발생 위험도가 0.9배로 낮아졌다.

가구소득이 낮은 사회적 요인이 ADHD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근거가 제시된 것이다. 연구팀은 외국의 연구에서 확인된 것처럼 어린 시절의 가난과 이에 따른 건강 격차, 육아방법의 차이, 부모의 관심 부족 등이 직·간접적으로 ADHD 발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현재로선 ADHD에 가장 효과를 보이는 치료방법은 약물치료다.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 등의 호르몬 분비와 작용에 문제가 있는 경우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재흡수를 막아 농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시키는 약제가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을 줄이는 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ADHD 증상이 나타나게 만드는 신경생리적 요인 중 하나인 호르몬 분비도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받는 셈이다.

소득급감 가정 아동 발생위험도 1.7배 높아

소득이 낮아 가정 내에서 영·유아 시기 비교적 육아에 신경을 쓰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아이의 욕구가 제때 충족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더 자주 분비되고, 이 상태가 계속되면 아이는 높은 코르티솔 수치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스트레스는 뇌의 전전두엽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왔다. 전전두엽 피질의 성장이 늦어지는 것은 ADHD의 원인 중 하나다. 아이에게 높은 스트레스가 가해지는 육아환경이 ADHD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배경일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호르몬은 외부 환경의 영향이 증후군으로 나타나게 하는 여러 연결고리 가운데 하나가 된다.

물론 소득수준과 그에 따른 육아환경의 차이만으로 ADHD의 발생 원인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소득이 급격히 줄어들고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상황이 ADHD를 낳는 여러 배경 중 하나로 작용할 수는 있다. 연구결과에서 소득이 높은 상위층 아동의 ADHD 발생 위험도가 1.1배로 다소 높게 나타난 점도 결과를 비약해 해석해선 안 된다는 점을 유의하게 한다. 다만 문제가 되는 질환의 발생 위험도를 낮추는 데 정책적인 예방대책이 효과를 보일 가능성은 높다. 연구팀의 박은철 교수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가정불화, 마찰 등이 아이들에게 정신적·심리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이번 연구는 어린아이들이 전 생애에 걸쳐 건강한 삶을 살게끔 하려면 어린 시절부터 사회·경제적 수준의 차별 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개입이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가 낮을수록 더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된다는 연구결과는 속속 나오고 있다. 부모세대의 높은 코르티솔 수치가 자녀세대에서도 유전적으로 대물림되는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부모 아래서 자라는 자녀 역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환경에서 살게 될 개연성은 높다. 2014년 5월 <사이언스>지에 실린 미국 프린스턴대 요한네스 하우스호퍼 교수 연구진의 ‘가난의 심리학(On the Psychology of Poverty)’이라는 논문은 호르몬이 소득이나 지위 등에 좌우된다는 연구결과를 보여준다. 특히 이 논문은 연령이 낮은 유아와 아동에게도 성인과 똑같이 외부 환경에 따라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높아지는 결과가 나타난다는 점을 제시했다. 논문을 보면 소득이 낮고 교육받은 기간이 짧을수록, 그리고 경제적으로 취약할수록 코르티솔 수치는 높게 나타난다.

소득 낮을수록 더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

소득과 지위의 격차가 건강의 불평등을 낳고, 다음 세대로 대물림되기까지 하는 현상은 어느 한 나라만의 것은 아니다. 영국에서는 1980년 건강불평등의 원인과 현실을 조사한 ‘블랙 보고서(Black Report)’ 발간을 계기로, 건강 불평등 문제에 관한 새로운 정책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이 보고서는 사회계층에 따라 사망률에 격차가 나타나는 현실을 밝히면서, 건강 불평등의 원인이 단순히 흡연과 같은 생활습관의 일부 때문만이 아니라 보다 넓은 공적영역의 문제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그러나 영국 노동당이 보고서 발간 이후 장기간 집권하지 못하면서 ‘블랙 보고서’의 건강 불평등 대책은 한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이후 노동당이 다시 집권했을 때 나온 ‘애치슨 보고서(Acheson Report)’와 최근의 ‘마못 리뷰(The Marmot Review)’ 등에 이르기까지 영국에서 나온 건강 평등권 대책은 아동을 비롯한 모든 사회 구성원이 건강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고서는 “모든 아이들이 인생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시작할 수 있게 하기”와 “모든 아이들과 어른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삶을 통제할 수 있게 하기”, “모든 사람이 공정하게 고용돼 좋은 직장에 다닐 수 있게 하기” 등을 정책과제로 담고 있다.

건강 불평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선진국들에 비해 한국의 현실은 초라하다. 특히 직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장시간의 노동환경이 노동자 자신의 건강을 포함해 배우자와 자녀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한국 사회의 특징적인 면이다. 직업환경의학에서 쓰는 ‘프리젠티즘(presenteeism)’이라는 용어는 한국 사회의 건강 불평등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록 출근(present)을 하기는 했지만 질병을 앓고 있거나 피로가 쌓여 몸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억지로 일해야 하는 상황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직장맘’ 최현지씨(33·가명)는 매일 출근해 회사 사무실 문을 들어설 때마다 ‘쓰러지지 않고 도착했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남편이 한 달 동안 지방으로 파견을 간 탓에 아기를 돌보는 것은 물론 집안의 모든 가사를 최씨 혼자 도맡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멀리 사는 친정어머니를 부르고 가사 도우미를 써가며 겨우 한 달을 버티고서야 남편의 파견이 끝났다. 그동안은 회사 업무도, 가사도 온전히 굴러가지 못해 스트레스는 더욱 극심해져 갔다. 최씨는 “무엇보다 퇴근하고 녹초가 돼서 아이를 봐야 하는데, 애가 우는데도 내가 비몽사몽간에 아이한테 회사 업무 얘기를 하던 게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노총이 산하 단위사업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는 ‘프리젠티즘’이 만연해 있는 직장 현실을 잘 보여줬다. 조사 결과 ‘최근 일주일 동안 건강문제가 일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이 57.4%로 절반을 넘었다. 또한 건강문제가 일에 영향을 미친 정도가 중간을 넘어 심각한 수준이라고 응답한 응답자도 16.9%에 달했다. 업무에 영향을 미친 건강문제는 근골격계 증상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수면문제의 비중이 뒤를 이어 만성적인 피로상태가 업무를 포함한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사결과마저도 건강상의 문제를 참고 일해야 하는 ‘프리젠티즘’ 분위기 때문에 현실을 부분적으로만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조사를 맡은 원종욱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는 “국내에서의 연구는 일부 직업과 관련돼서는 프리젠티즘에 대해 단면적으로 파악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스트레스를 부르는 사회적 환경과 그에 따른 신체의 호르몬 변화가 건강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문제는 ‘수면의 불평등’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소득이나 지위가 낮을수록 장시간 노동을 피할 수 없고, 자연히 수면시간이 줄어드는 문제는 호르몬의 불균형을 거쳐 심혈관계 질환 등 보다 위험한 질환의 발병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수면이 부족하면 렙틴과 그렐린 같은 식욕조절 호르몬에 영향을 미쳐 충분한 수면을 취했을 때보다 더 배고픔을 느끼게 만들어 더 많은 열량을 섭취하게 된다. 이로 인한 체중 증가와 비만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높아지는 상황과 맞물려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발병 위험까지 높인다.

하버드대 의과대학의 찬드라 잭슨 교수 팀이 2015년 3월 발표한 논문을 보면 인종이나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나타나는 심혈관 질환의 불평등이 수면 불평등과 관계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수면이 개인의 습관에 따라 이뤄지기보다는 사회적 조건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열악한 환경에 있을수록 수면이 부족하고 만성적인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건강 불평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도 가족의 영향을 크게 받는 아동들이 수면에 대한 부정적 영향에 취약하다는 점이 강조돼 있다. 부적절한 양육방식이나 가정폭력 외에 부모의 우울증, 야간 교대근무 같은 요인들까지 자녀의 수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부모세대에서 자녀세대로 이어지는 스트레스와 호르몬 분비의 악순환 역시 그 자체로 모든 건강 불평등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건강 불평등을 낳는 많은 요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때문에 바꿔 말하면 다른 조건은 바꾸는 데 제약이 있더라도 사회의 공공보건정책을 비롯해 노동환경과 육아환경을 개선하기만 해도 해당 요인으로 생기는 악영향은 줄일 수 있는 셈이다

건강 불평등 문제 새로운 정책으로 제시

스트레스 호르몬과 관련된 미국 스탠퍼드대학 새폴스키 교수의 유명한 개코원숭이 연구도 같은 결론을 말해준다. 포식자가 들이닥치는 등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개코원숭이들은 불안을 느끼며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올라가는 것이 혈액검사로 확인됐다. 여기까지는 서열이 높거나 낮거나 크게 차이가 없지만 스트레스 상황이 끝난 이후부터 서열에 따른 격차가 나타난다. 서열이 높은 개코원숭이들은 상황이 끝나면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서열이 낮은 개코원숭이들은 스트레스 상황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불안을 느끼며 높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스트레스 호르몬의 격차를 부르는 요인이 사회적 관계에서의 지위와 서열 때문이라면 보다 평등한 관계가 공동체나 조직 안에서 유지될수록 사회 전반의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도 낮출 수 있는 것이다.

호르몬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사회적 불평등이 건강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이미 여러 연구결과 확인된 바 있기 때문에 이를 막는 대책 또한 한국 사회에서 더욱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조홍준 울산대 의과대학 교수는 “건강 불평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는 학계 내에서는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이 공고히 자리잡고 있다는 입장이 있고, 여기에 스트레스의 악영향을 높이는 호르몬에 초점을 맞추는 입장도 병존하고 있다”며 “소득이나 지위와 같은 사회적 요인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의 건강 불평등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국 노팅엄대에서 사회역학과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건강 불평등에 관해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연구들을 수행하다 은퇴한 리처드 윌킨슨 교수는 자신의 저서 <평등해야 건강하다>에서 건강 불평등을 초래하는 다양한 미시적 요인들에 주목했다. 사회적 환경이 나빠지면서 개인의 건강도 나빠지는 복잡한 관계를 규명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의 호르몬 분비 이상과 같은 작은 요인들이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야간 노동이나 장시간 노동 등 부모세대의 사회적 환경과 얽히면서 결국 자녀세대가 성인이 되었을 때 각종 질환에 노출되거나 기대수명이 짧아지는 등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현실을 추적했다. 윌킨슨 교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정부가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방치한다면, 가난한 사회 구성원 일부를 기대수명의 차이만큼 감금하거나 사형대에 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주간경향 2017.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