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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증후군'으로 병원 찾는 엄마, 아이는?

다중지능 2016년 06월 18일 13:10 조회 15988

 
엄마를 지치게 만드는 '공부 전쟁'

"나이 먹는 건 싫지만, 아이만 자란다면 괜찮아요."
"도대체 얘는 언제 커서 밥벌이한 대요?"

많은 어머니에게 하루 걸러 듣는 하소연이다. 한국이란 곳에서 자녀를 공부시키는 일은 1분 1초 쉬지 않고 마라톤을 뛰는 일처럼 버겁고 지치는 일이다. 무려 12년이나 아이와 손을 잡고 대입을 향해 뛰어야 하는 현실에서 뜨악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에 있을까. 

마라톤에서 사점 구간(Dead point)이 있듯, 아이를 공부시키는 데도 사점 구간이 존재한다. 초등학교 때는 4학년이 그렇고, 중학교는 2학년이 그렇다. 고등학교 때는 대입이 코앞이라 부모와 자녀 모두 3년 내내 '지옥의 문앞'까지 다녀올 정도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그래서 그런가? 이 시기의 자녀를 둔 부모들이 내원하는 경우가 부쩍 늘어났다. 아이를 공부시키느라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 온 것이다. 연소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번아웃 증후군은 한 가지 일에 자신을 너무 사용한 나머지 심신이 피로해져서 무기력증과 집중력 저하를 동반하는 질병이다. 그러던 차에 <공부는 감정이다>(노규식 지음, 더부크 펴냄)라는 책을 선물로 받게 되어 이렇게 서평까지 쓰게 되었다.
 
지금껏 잘하던 아이가 사점 구간을 기점으로 공부를 놓기 시작한다면? 이때부터 제1차 세계 대전보다 치열한 공부 전쟁이 집에서 펼쳐지게 된다. 당사자인 아이와 엄마는 물론 다른 가족도 전시 태세다.

'공부를 안 하던 아이도 아니고'가 엄마들이 이 전쟁에서 질 수 없는 명분이라면, '어려워서 더는 못 하겠다'는 아이가 부모의 뜻대로 할 수 없는 '생존의 비명'이다.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는 싹 무시된 채 아직도 대한민국 곳곳에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은 공부를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의 갭을 줄이는 '학습 전략'과 '감정 관리'를 큰 기둥으로 삼았다. 동시에 관계의 법칙, 감정 공부의 법칙, 유능감의 법칙, 준비의 법칙, How to study의 법칙, 한 팀의 법칙이라는 6개의 하위 개념으로 두 기둥을 떠받들고 있다. 여섯 가지 모두 다르게 보이나 결국 공부에 대한 감정 이야기다. 

저자 노규식은 학습 주치의이기 전에 소아청소년 심리를 전공한 정신과 의사다. '공부에 대한 감정을 대물림하라'고 강조하는 것은 그의 정체성을 생각하면 금방 수긍이 간다. 나 역시 정신과 의사라서 그런지 아래의 구절이 가장 인상 깊었다. 

"'나는 수학은 못 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아이야'처럼 설사 못 하는 부분이 있어도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게 자신감이고,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수학은 잘해'처럼 특정 분야에 대한 자신감이 효능감입니다. 효능감이 계속 쌓이면 점점 범위가 확대되면서 자신감이 높아집니다." 

아이에게 효능감을 쌓도록 함으로써 자신감을 갖도록 하라는 지침은 우등생들이 갖는 정신적 태도와 맞물릴 뿐만 아니라, 자녀가 공부하는 동안 겪게 될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는 바탕이 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책을 깊이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저자는 11년 동안 아이들의 공부를 봐준 이답게 '공부 영재로 키우는 전략'에 대해서도 정리를 해놓았다.

공부에 지지 않는 연습 

"공부에게 진다는 말은 단순히 성적이 나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님의 불안으로 초등학교 1학년에게 이것도 시키고, 저것도 시키다 4학년이 되었을 때 그 나이에 갖춰야 할 사고의 힘,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갖춰지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양으로 하는 공부는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학생들 간에 '학습에 투자하는 시간의 편차'가 크지 않은 고등학교 시기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초등학교 5, 6학년 때 '질로 하는 공부 습관(내용 요약, 노트 필기, 시간 관리, 개념 정리)'을 들여놓아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이도 공부를 잘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무력감을 느끼게 되고 '공부의 기역자'만 들어도 예민해진다. 그런데 옆에서 이런 자녀의 모습을 보는 부모 역시 무력감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각자 감정을 관리한 후에 마주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이는 그 방법을 모르니 어른들이 가이드를 해줘야 하며, 부모님 역시 스스로 감정을 컨트롤해야겠다는 문제의식만 가져도 도움이 된다. '욱'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어떠한 것도 설득할 수 없음을 명심하라. 한 가지 힌트를 주면 본서에서는 엄마나 아이 모두 '감정 관리'가 잘 되기 위해서는 '공부가 잘 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아이만 '학업 실력', '공부 전략'이라는 팩트에 변화에 생겨야 공부 감정이 나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님들도 감정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사회 변화에 맞는 정보력을 갖춰야 합니다." 

즉, 아이는 '공부가 술술 풀리는 학습법'을, 엄마들은 '시대 변화에 맞는 다양한 정보력'을 갖출 때 편안한 감정이 만들어진다는 것. 설득력 있는 주문이다. 여기서 '정보력'은 새로운 입시 트렌드, 좋은 학원 등과 같은 것이 아니다. 부모님이 판검사만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그 직업을 얻기 위한 관문을 통과시키기 위해 아이를 닦달할 수밖에 없고, 현실이 따라주지 못하면 자기혐오와 무력감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부모의 감정이 아이에게도 전염이 된다는 점이다. 부모가 다양한 직업과 교육 방법을 숙지하면 숨통이 트이게 되고, 보다 여유를 가지고 공부를 시킬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논지다.

가족의 관심이 엄마의 번아웃을 막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가족에게 SOS를 치는 시늉이라도 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안다! 남편이나 다른 식구의 간섭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허나 외롭게 등짐을 짊어지고 갈 필요가 없다. 저자 역시 책에서 이 점을 강조하였으며, 특히 남편들의 관심을 독촉하였다. 

"아내는 온종일 학원을 쫓아다니며 수집한 정보인 만큼 어느 하나 버릴 게 없습니다. 아내를 대신해서 아버지들이 가지 칠 건 쳐주고, 가져갈 건 가져가자며 응원을 보내주면 윈-윈이 될 수 있습니다. 아빠의 무관심이란 '관심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님보다는 품을 팔지 않은 만큼 '맹신이나 감정을 덜어서 선택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엄마들이 아이를 공부시키는 과정에서 번아웃을 겪는 커다란 이유가 '외로움'과 '공허함'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녀 교육에만 매달렸는데,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공허함이 밀려옴과 동시에 모든 비난을 감당함으로써 외로움의 늪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엄마 주도적'으로 자녀 교육을 한다고 해도 책임 역시 '엄마 꺼'라는 식의 암묵적 동의에 따르지 마라. 이건 아이에게도, 엄마 자신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끝으로 현재 아이의 공부나 성적 때문에 갈등을 빚는 중이라면, 학원이나 성적을 가지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이 일로 엄마와 자녀가 주고받은 불편한 감정과 언행들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그래야만 상흔이 남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장거리 질주에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현정 국립중앙의료원 교수
2016년 6월18일 프레시안에서 발췌